독일에서 5년이라는 시간
독일로 온지는 6개월 후면 만 5년의 시간이 된다. 다사다망 했다.
나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독일에서 5년의 시간은 어쩌면 특별할 수도 있다. 사람마다 조건은 다르지만 5년 정도 살면 독일 정부에 기간을 정해두고 ‘이러한 이유로 얼마동안 살겠습니다’라는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이제 비자를 신청하지 않고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뜻이다.
독일에 공부하러 온 사람이라면 5년은 어학으로 시작해서 학사나 석사를 해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성공적으로 학업을 마쳤다면 이들도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연금을 5년동안 냈다는 증명을 하면 된다. 그렇다면 나는?
비자 연장
남편은 이미 몇 년 전에 영주권을 취득 했다.
나와 아들은 열심히 학업을 하거나 일은 하지 않았지만, 남편의 블루카드 아래 가족이라는 이유로 그간 쉽게 비자를 취득한 편이다. 사실 지금껏 그 사실을 알 지 못했다. 요청하는 서류를 준비해 갔고 외국인청에서는 별 문제 없이 쉽게 연장을 해줬다.
‘다 그렇게 받나보다.’
비자에 대해 아무 감흥이 없었고, 관심과 스트레스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서류를 준비하면서 부터 내 남편 말고, 나 스스로도 독일에 살아 갈 수 있는지에 대한 입증이 필요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의 독일어 증명과 Integrationskurs 증명서, 이미 영주권이 있음에도 남편의 경제 상황들은 증명되어져야만 했다.)
#외국인청 방문
블루카드 때와는 달리 외국인청 위치도 달랐다. 처음으로 Wedding에 위치한 곳을 방문했다.
헤비메탈 음악을 틀어져 있는 10평 남짓한 사무실에는 우리의 담당자인 남성이 혼자 앉아있었다. 원래는 두 명이 일 하는 듯 하나, 휴가인지 맞은 편 자리는 비어져 있었다. 인상이 남는 것은 우리는 아이 포함 3명이었지만, 앉을 수 있는 의자는 한 자리 뿐이었다. 공무원은 그에 대해 아랑곳하지 않았다. 왜 왔는지에 대한 질문도 없이 그의 손이 우리를 향해 나와 있었다. 그게 그 곳의 강력한 첫 인상이었다.
코로나로 공무원과 우리 사이에는 간단한 유리창으로 막혀 있었는데, 나는 그 유리 사이 작은 창을 통해 공무원의 손 위에 가지런히 우리 여권을 주었다. 꼼꼼히 준비해 온 서류철은 책상 위에 두었다. 마치 교무실에 찾아간 학생처럼 공손히 서 있었고, 뭐 특별한 말 없이 컴퓨터로 슥슥 체크를 하더니 공무원이 이번에는 우리 서류철에 손을 뻤었다. 조용한 방에 헤비메탈은 시끄럽게 나오고있었다. 분위기에 압도 당해서 혹시 나도 이번에 영주권 받을 수 있는지 물어 보려던 말은 매끄럽게 목구멍 뒤로 숨어버렸다. 모든 작업을 끝낸 공무원은 갑자기 이것저것 속사포로 말들을 쏟아냈다. 독일어 몇 마디는 얻어 주어들었지만 대부분은 이해를 못했다. 알았다 알았다 고맙다며 나온게 그게 끝이다.
나는 이번에 비자 연장 3년을 받았다. 6개월 후면 만 5년이 되니, 영주권 신청을 할 수 있다는 이메일을 우리에게 보냈다며 헤비메탈 소리만큼 우렁찬 목소리로 설명했다.
불편하다. 영주권이 나오면 평안에 이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