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 생활 블로그

어디에 살 것인가…

2023-09-01
여름 휴가때 다녀온 불국사 대웅전

한국에서 여름 방학을 보내고 베를린에 도착하자마자 11년 전 여행에서 만난 미국인 친구가 우리집으로 놀러 왔다. 더이상 싱글이 아닌 친구는 부인과 1살난 아들을 동행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것은 ‘어디에 살 것인가’ 였다.


친구는 본인이 태어나고 자란 미국에서 살지, 부인이 태어나고 성장한 프랑스에서 살지 고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했던 말은 미국은 비싼 의료비와 학비 부담 스트레스는 기본으로 깔고 있지만, 프랑스는 그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어서 고려해 보고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본인은 미국의 문화가 더 좋아서 본인처럼 아들도 미국에서 성장했으면 했다.

친구 부부는 본인들은 겉은 노란색 속은 하얀색인 바나나라고 칭했다. 친구부부는 모두 동양인이다. 하지만 한 명은 미국에서, 한 명은 프랑스에서 나고 자랐다. 그러니까 겉모습만 동양인이지, 행동이나 사고는 백인이라는 말이다.
독일에서 살기로 결정 하면서 나는 이 친구에 대해, 이 친구와 여행하면서 나눈 대화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우리 아들도 부모의 선택으로 바나나로 성장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어디에 살 것인가..

이번 한국 방문에서 만난 친구들도 우리가족이 계속 베를린에 살것인지에 대해서 궁금해 했다. 그에 대해 우리는 아직 다른 곳은 찾지 못했다는 답변과 함께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는 베를린에 있을거라고 했다. 큰 이변이 없는 한 정말 그럴 것 같다.

오래간만에 한국에 다녀오니 베를린 혹은 독일은 가족이 살기에 좋구나 라는 생각이 확실해지긴 했다. 많은 이유가 있지만 간단하게 말하면 아이들을 혐오하지 않는 전반적인 분위기와 아이가 있는 가족들이 많다는 것만으로 좋다.

시차적응을 실패 해 너무 일찍 일어난 아들과 나는 집에서 뒹굴다 아홉시 쯤 집 앞 공원으로 축구공을 들고 나갔다. 우리처럼 아빠와 유모차에 탄 어린이 커플들도 아침 일찍부터 놀이터를 향하고 있었다. 아침 10시인데 놀이터가 유모차 부대로 왁자지껄하다.

오늘은 아들의 등교 첫 날이었다. 아들과 같이 학교갈 때는 정신없어 몰랐는데 오는 길에 보니 나처럼, 많은 부모가 3명 혹은 2명을 아이를 자전거로 이 곳 저곳으로 활기차게 이동하는 모습을 봤다. 그리고 집에 도착해 본 기사는 올해 독일에는 더 많은 아이들이 입학한다는 기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베를린에 계속 살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 베를린보다 더 마음에 드는 도시를 찾지 못했을 뿐이다. 최근에 아들과 대화를 하다가 우리아들이 본인은 나중에 어디에 살고 싶다라고 말하는데, 베를린이나 서울이 아니라서 신기했다.

베를린이 지금 우리 가족이 살기엔 괜찮다.

어디에 살 것인가.

독일, 프랑스, 미국… 어느 곳이 좋을까. 친구가 본인이 경험한 미국의 문화가 좋았고, 친구 부인은 본인이 경험한 프랑스 문화가 좋았던 것 처럼, 나도 내가 자란 대한민국이 좋다.

한 가족이 어디에 살 것인가를 생각할 때 역시 가장 중요한건 역시 사람을 지배 하는 그 나라의 문화가 아닐까. 친구도 사실 그 문화에 대해 고민 중인건 아닐까. 한국에서는 겸손을 중요시하고, 프랑스에서는 잘하는 것을 뽐내야하는게 미덕인 건 한 인간의 가치관과 세계관, 삶에 대한 태도의 전부 일테니까 말이다.

나에게 너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독일에서 살게 된 이상, 부모로서 나는 우리 아들이 멋진 바나나가 되길 바랄 뿐이다. 겸손한 아이도 좋고, 잘난 척하는 아이도 좋다. 그래서 가장 쉬운 건 우선 여름에는 한국 방문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속이 하얀 바나나에 노란물을 지속적으로 부어 우리 아들이 속이 알록달록한 바나나로 성장하길 바란다.

친구가 말했다. 바나나 맛 좀 볼래? 맛있어 🙂

아들아, 밝고 맑고 명랑하게 자라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