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돈 1유로로 중고책 사는데 몇 주간 나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책들도 새 것처럼 깨끗했다.
지난주 그 책이 오기 전까지 말이다.
한동안 이베이를 즐겼고 한국에서도 즐겨하지 않았던 중고 구입에 신이 났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은 책이 오고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시간을 내어 굳이 안 좋은 평가를 남겼다.
다음날 아침 판매자는 내게 저주를 보냈다(mit einem Fluch belegen).
나는 그 저주를 안 받고 돌려보내고(법륜스님의 법문 중 이런 내용이 있었다), 책은 쓰레기 통에 버렸으며, 2,55유로 값으로 저 숙어를 외우기로 했다.
게다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저주풀기 놀이를 아들과 함께 하기도 했다. 기분이 의외로 괜찮아졌다.
나이가 들면서 말은 점점 줄어들고,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이유들이 점점 생겨간다.
이번 두 달이 과연 나에게 어떤 삶을 살게 할지는 두고 보면 될 일이지만, 확실한 것은 지금처럼 살면 결국은 나에게 미안한 일이되지 않을까.
40대의, 50대의, 60대의 나에게.
역시나 하기는 싫은 것이 바탕에 있지만…
하기 싫은 일은 누구나 가끔 하니까. 그 가끔이 지금이다.
나의 숙명 영어 시험 공부.
글을 써서 기억해야지. 안 그러면 점점 더 과거가 잊혀진다.
과거를 다시 꺼내어 기억해보고 싶을 때가 있는데, 꼭 그런 것들은 내 머리 속에서 나오려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좋았던 순간들을 내가 과거에 경험 했던 것으로 생각하다가도 내가 왜곡한 건 아닌지 돌이켜본다.
과거에 끄적여 놓았던 일기들은 내 과거에 대해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을 꺼내준다.
가끔 그 글을 읽을 때면 재미있게도 내 이야기들로 다시 그 때의 감정이 살아난다.
황당할 때는 글쓴이가 분명히 나인데 왜 이런글을 썼는지, 정말 내가 썼는지 의심이 드는 글들도 있다.
내 스스로에게 쓴 글 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나의 감정을 너무 많이 숨기려 했던걸까?
내가 다시 돌이키고 싶은 과거에 순간이 있는데 나는 그 때 왜 내 이야기, 내 생각으로 남겨두지 않았을까?
다시 읽어 볼 나를 위해 지금보다 날 것으로 써야겠다.
정말 내 감정, 벗은 나체의 내 속 마음. 쓰자.
SES가 부릅니다.
지겨운가요. 힘든가요. 숨이 턱까지 찼나요..
할수 없죠. 어차피 시작해 버린것을.
쏟아지는 햇살 속에 입이 바싹 말라와도
할 수 없죠 . 창피하게 멈춰 설 순 없으니.
이유도 없이 가끔은 눈물나게 억울하겠죠..
일등 아닌 꼴등들에겐 박수조차 남의 일인걸
단 한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끝난 뒤에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것..
세상이 만든 미친 년
세상에서 미친 년
세상에선 미천한 년
그것은 바로 여자일생의 법칙이었다.
2019년을 마치며 천명관의 ‘고래’를 읽으며, 나는 어떤 년이 될 것인가.
‘언어학습은 누군가와 말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샘솟는 것이지 바보로 여겨지기 싫다는 이유는, 내 생각에 아닌 것 같습니다.
그게, 그렇잖아요. 바보로 여겨지기 싫어서 무언가를 습득한다면, 인간은 습득하지 못한 사람을 깔보게 되지 않을까요?’
마스다미리, 오늘의 인생
‘常に考える’ (항상 생각한다)
금요일 오후 사람 북적이는 Zoologischer Garten역,
나는 계단에서 장난을 치고 싶어하는 아들을 제지하며 손을 잡고 힘겹게 내려온다.
어떤 여인이 조금 멀리서 부터 나를 향해오며 말을 건다.
“do you speak english?”
“no”
아주머니, 그 많은 도움 줄 수 있는 사람 가운데 제게 왜요?
이전보다 조금 더 사람들의 태도와 행동에 민감한 삶을 산다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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