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 생활 블로그

독일 수의대 : Physikum 끝

2024-10-02
출처는 교수님 ppt.. Physikum EKG, 아마존에서 구입 가능

드디어 Physikum을 끝냈다. 이건 내가 공부를 시작하면서의 목표였다. 시작했으니까 최소한 여기까지는 해야지.

Physikum은 수의대 공부 중 가장 어려운 시간이 이 시간이라고, 이것만 넘기면 어떻게 어떻게 지나간다고 했다.(그 다음 또 어려운게 있지만, 이걸 해냈으면 그 다음의 어려움도 할 수 있다 정도?로 해석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3년 내내 그리고 최근까지도 공부를 그만둘까, 포기할까를 많이 생각했다. 많은 시험이 너무 힘들고 사람을 정신적으로 지치게 만들었다. 뭘 얻고자 한 건 아닌데 그냥 시작한 거니까 Physikum까지는 어떻게 하자 라며 지금까지 왔다.

근데 사실 싱겁게, 너무 운 좋게 Physikum은 끝났다. mündliche Prüfung의 단점이라고 볼 수도 있다. Anatomie는 그래도 괜찮았지만… Physiologie는 자신이 없어서 불안한 마음으로 전날 잠을 전혀 못 자고, 떨어질 마음으로 갔는데 교수님들이 내가 아는 내용을 물어보셨다.

Anatomie는 Unterarm Muskeln, Kaninchen Situs, Penis tierartliche Unterschied

Physiologie는 Natrium Absorption in der Niere mit hormonelle Regulation, Muskel Energieversorgung, Leukozyten Zählen unter Mikroskop

사실 공부는 계속 열심히 한 것 같은데, 계속 까먹는다. 잊고 또 잊고.

외국어로 공부하니까 더 그런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학기 중에 Physiologie는 우리 몸에 대한 거라서 사실 재미있게 배웠다. 그런데 시험 준비를 하려고하니 범위가 너무 넓어서 덜컥 겁이 났다. 내용을 한 번씩만이라도 전체적으로 다시 보고 싶은데, 어떻게 계획을 세워야될 지 감이 잡히지 않아 당황했다. Physiologie에서 배울 때 재미있었던 부분은 많았는데 그 중에서 인상깊었던 부분은 무언가를 배울 때에 Talent가 있어야 한다는 부분을 교수님이 언급한 부분에서 였다. ‘아! 나는 공부에 Talent가 없구나.’라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 교수님은 Talent라는 말은 Vorkenntnis(사전지식)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 했다. 사전지식, 그러니까 어디 선가 들어서, 봐서, 경험해서 대충이라도 내용을 알고 있다면 새로운 지식이지만 그 내용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보다 그에 대한 장벽은 낮다라고 나는 해석했다. (유학을 하고 싶다면 석사 이상으로 시작하는게 좋아요..)

하지만 나는 요즘 솔직히 말해서 계속 이 수의학이란 공부를 해야할 지 고민이다. 이렇게 힘든 공부인데 그럼에도 ‘희망이 없다’라고 느껴서인거 같다.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졸업한 한국인 선배의 영향도 있고, 내가 알고 있는 독일인 수의사도 그렇게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주지 않아서 그런거 같다. 이렇게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으며 나를 갉아가며 하는 이 공부의 끝에 나는 직업이나 가질 수 있을까? 뭐 이런 종류의 생각.

10월까지 다시 Tierärtliche Prüfung 국가시험 신청을 다시 해야한다. 서류 준비는 해놓고 보내지도 않고 있다. 원론적으로 ‘과연 나는 이 공부를 계속하고 싶은가’라는 고민을 했다. 독일에서 공부하고 싶었던 이유는 미생물을 공부해보고 싶어서 였다. 식품화학을 공부할까, 수의대 공부를 할까 고민하다가 이 공부를 선택했는데 나는 왜 공부가 하고 싶었을까.

시험이… 개 힘들다..

이런 저런 생각 끝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그냥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어제 친구와 이런 저런 이야기 하고 학교에서 집으로 걸어 오면서 내린 결론이다.

독일에서는 역사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Studium zum Taxifahrer라고 한다고 했다. 졸업해도 일자리를 찾기 어려우니까. 나도 뭐 그런 생각으로 공부하기로 했다.

또 수업이야기를 하다가 한국인 교수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다. 그 분의 이력을 보게 된 건 북한 사람인지, 한국 사람인지 알고 싶어서 였다. 그러다 그의 이력을 보니 ‘사람의 미래는 정말 알 수 없구나’를 다시 한 번 느꼈다. 10대 부터 찬란한 이력을 뽐낸 그 이력은 전형적인 한국인 엘리트였다. 그리고 지금도 이 대학에서 한국학 수업을 할 정도로 대단한데, 내가 느낀 대단한 이력은 물리학과에서 한국어학과로의 변경이었다. 나와는 다른 색깔의 고민이었겠지만 그 사람에게도 그런 비슷한 사건이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전혀 다른 길로 그를 인도하지 않았을까. 그 분에게 평범할 지금은 그 당시에 모르셨겠지.

20대 초반 아이들과의 이야기는 즐거웠다. 나도 첫 대학 생활을 그렇게 했던거 같다. 아무 생각없이. 목표없이. 별 다른 스트레스 없이 누구와 비교하지 않고, 그냥 관심있는 분야의 책을 읽고, 만나면 기분 좋은 친구들과 시덥지 않은 우스개 소리를 하면서. 수업에 들어가서 궁금한 내용 열심히 듣고, 놀고, 공부하고, 성적 이정도면 만족.

학생은 그거면 되는데, 이 공부를 시작하고 시간만 되면 나는 내 미래에 대해 의식적으로 너무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이도 많은데, 나는 이제 뭘 해야하나. 어떤 우연과 스스로의 생각이 어떤 방향으로 미래를 이끌지 모른다. 그러니 Studium zum Taxifahrer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자유롭게 나를 좀 놓아줘야겠다.

최근 몇 주전부터 주말에는 가족과 수영을하고, 화요일에는 수영강습을 받고 있다. 그런데 부정적인 생각이 나를 몰아치던 주말부터 깊은 물에 들어가면 숨이 안 쉬어져서 죽을 거 같은 느낌이 들어서 몇 미터도 못가고 옆에 난간을 붙잡기 일 수가 되었다. 심지어 기분이 영 좋지 않아 이번 주말에는 아들과 낮은 물에서 놀다가 왔다. 화요일에도 전혀 증상이 나아지는 기미가 없어서 수영 강습을 하는 분에게 내가 갑자기 이렇다고 하니,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심리적인거라고 너의 영법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아니면 그냥 깊은 물에 계속 있으라고 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심장이 너무 두근거렸다. 수영장 바닥 깊은 곳을 계속 바라만 봤다. 증상이 조금 괜찮아졌다. 다음주는 더 괜찮아지겠지.

부정적인 생각은 정말 무섭다. 잘하던 것도 순식간에 못하게 만든다.

나에게 부정적인 미래를 이야기하는 사람들과 내 삶이 같지 않고, 사람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것도 아니니까… 어떻게 될 지 아무도 모른다. 마치 이번 Physiologie 시험에서 ‘그래, 능력이 없으면 그만해야지’라고 다짐하고 떨어질 생각으로 갔는데 첫 시험에서 너무 황당하게 붙은것 처럼… 잡생각은 이제 그만하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고, 아들은 이제 나와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아빠와 브로스타즈 하는 걸 더 좋아한다.

나에게 어서와… 라고 하는 건 5학기의 미생물들 뿐…

p.s. 나종호 교수의 ‘만일 내가 그때 내 말을 들어줬더라면’이라는 책을 읽었다. 의대 공부가 힘들었지만 그에게는 미국에서의 2주간의 짧은 경험이, 실습하면서의 경험이 그에게 어떤 조금의 희망이 있었나보다. 나에게도 하고 싶은 분야가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면 반짝반짝 내게 흰트를 주면 좋겠다.

아지매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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